4.11

by Kumo · 2026

4.11. 2026
Subject:

공민,

가족에 관한 건 언제나 힘들어. 너에게 좋은 방식이 무엇일지는 네가 제일 잘 알겠지. 오랜 시간동안 고민한 문제니까 좋은 결정을 할 거라고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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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에 대해 이야기 했지. 내가 쓴 가면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했어. 내게 가면은 사회적 언어로 이루어져 있거든.
내가 사는 세상은 소수의 의견으로 이루어진 세상이야. 나는 하나의 벌집에 소속되어 있고, 벌떼들과 소통하고 생활하며 습득한 언어가 있어. 줄리아 스탠리는 내 벌집을 “자신들만의 언어가 있는 서브컬쳐”라고 불러. 이런 꿀벌 공동체의 집합족을 부르는 말인 것 같은데, 아무튼 벌집마다 서로 다른 언어적 이해를 가지고 살아가지.
그래서 그런지, 내게 사전적 정의가 맞은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아. 언어를 번역하고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이상한 말이지만, 난 새먼틱스, 즉 의미가 화용 없이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거든. 단어의 의미는 발화를 통해서만 나오는 것이라고. 그래서 뜬금 없지만 난 생물학자가 되고 싶어. 이미 그러기엔 좀 늦은 감이 있는 게 문제이긴 한데, 생물학자가 된다면 비인간 동식물의 언어를 공부하고, 그 언어가 언어임을 증명할 거야. 가끔 동물의 언어가 생산성이 없다는 주장을 들으면 화가 나거든. 동물의 모든 소통 속 의미도 결국 누군가가 ‘새로’ 만든 거니까.
내가 종이에 레즈비언이라고 적으면, 그 단어는 나에게 그 어떠한 의미도 없어. 사전적 정의는 중요하지 않아. 애초에 사전적 정의는 화용의 역사를 한 데 묶어놓은 것에 불과하니까. 아무리 절제된, 무결성의 사전적 정의인 “여성에게 성적인 관심과 매력을 느끼는 여성.”이라고 한 듯, 레즈비언의 어원이 기원전 6세기 그리스 시인이었던 사포가 살았던 레스보스섬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 없고, 1960년 전후 의학적 용어에서 정치적 용어로 넘어오면서 미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레즈비언 페미니즘에서 사용되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이유라는 사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레즈비언은 누군가에게는 “여성스러운” 펨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남성스러운” 부치고, 1970년대 미국에서는 중성적이고 유동적인 미감이었고, 우리가 현재 부치라고 부르는 남성적이거나 중성적인 여성은 다이크였고, 그건 바에서 주로 보이는 부류의 여성이고, 누군가에게는 혁명을 꿈꾸는, 정치적이고 래디컬한 레즈비언 서브 그룹을 의미하는 단어인 동시에 헤테로 세계에서는 레즈비언 전체를 가리키는 경멸적인 비속어였고, 그렇게 치면 각 서브컬쳐에서 다이크가 의미하는 바가 달랐고, 영어권에서는 왜 그리스의 시인에서 비롯된 언어를 굳이 써야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과 반발로 인해 다이크를 사용하자는 움직임이 있고… 동양권에서도 왜 굳이 서구권의 언어를 써야 하는지에, 다른 언어를 찾기 위함 움직임이 작게 작게 있다는 사실에는 관심도 없고. 어원은 그 단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사용되어왔는지와 관련이 없을 수 없기에, 결국 의미는 허공 상에서 존재하지 못하고, 현실적 화용의 역사에 기반하고 있지. 그러니까 사전을 다 불태워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닐지.
화용의 역사 뿐일까. 고양이를 키우고, 영혼의 단짝을 만나면 바로 집을 같이 구해서, 그 집에서 친구들이 모이면 펨과 부치의 모호함에 대한 탁상공론을 하는, 레즈비언이 살아가는 현실 세계가 그 단어의 가장 정확한 의미이지 않을까 싶어. 레즈비언이 순수 시간인 거야. 네가 쓴 것처럼, 규정할 수 없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
언어(의 화용)는 놀이인 거야. 규정할 수 없는 것을 규정하려 끊임없이 애쓰는 놀이. 언어의 롤플레잉. 놀이가 언어의 그 어떠한 발화내재행위보다 우선이야. 아니, 우선적 차원에서 이루어져.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이 게임에 관심을 가지는 거고. 글을 쓰는 게 게임이니까.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생산성이 있으면서 동시에 없으며, 재미라는 자질을 부여하는. 가장자리를 더듬거리며 두루뭉실하고 너울거리는 표상을 찾아가는 행위. 장르만 다를 뿐이지. 시는 인디 게임. 번역은 샌드박스. 소설은 일본 RPG. 에세이는 전략시뮬레이션. (이건 좀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