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by Gongmin · 2026

4.11. 2026
Subject:

쿠모에게,

게임에 관해 해주고 싶은 얘기가 하나 있어. 그건 서울에 위치한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는 한 책에 관한 거야. 그건 오유만물록. 도서관이 누군가의 집에서 다른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부터 소장되어오던 책이야. 책은 인쇄된 활자가 아닌 깃과 먹으로 쓰여 있으며, 책보다는 여러 사물과 토지에 대한 정보를 기록한 문서를 한데 묶은 장부에 가까워. (여기서 주의해야 될 점은 ‘지형’이 아니라 ‘토지’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점이야.) 언제 어디서 누가 만들었는지도 불가능해 보이는 이 책은 도서관에서 취급할 만한 책이 아니어서, 아마 도서관장이 생기고 생가가 제대로 된 도서관으로 탈바꿈하기 이전까지는 그냥 마을 사람들이 관리를 했을 거야. 누구나 오고 가며 책을 서재에 꽂을 수 있었겠지. 책은 세상에서 사라질 고비를 여러 번 거쳤고, 조선총독부가 소멸되면서 모든 장서가 국립중앙도서관으로 승계되는 과정에서 소실될 뻔했어. 이건 뉴스에도 나왔던 건데, 조선총독부 산하 소속이었던 일본인 사서 중 한 명이 이 책의 진가를 알아보고는 도서관에서 빼돌려서 일본으로 가져갔고, 거기서 책이 가족 대대로 내려오다 책을 마지막으로 소장했던 사람이 2004년에 고독사로 세상을 뜨면서 고독사 청소 중에 발견된 거야. 그곳이 와카야마현 나까쓰촌이었거든. 그렇게 나까쓰촌사무소에서 2005년에 히다카가와정사무소로, 이듬해에 히다카군사무소로, 같은 해에 와카야마현청으로, 10년이 지난 2016년에 와카야마 시민 도서관의 관장실 책상 위로, 같은 해에 사서의 책상 위로, 다음 해에 사서보의 책상 위로, 도서관이 CCC에게 인수운영이 된 지 3년이 지난 21년도에 ‘재활용 폐기’로 분류되어 칸다 고서점가의 한 헌책방으로, 이듬해 헌책방을 방문한 한 재일동포의 책상 위로, 같은 해에 국립중앙도서관 고문헌과 과장의 책상 위로, 지식정보관리부 부장의 책상 위로, 장서개발과 과장의 책상 위로, 다시 고문헌과 과장의 책상 위로, 고문헌과 연구관의 책상 위로, 고문헌실 담당 연구사의 책상 위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료보존관 지하 4층 목재서가로 옮겨졌지.
책에 대한 설명이 지난하게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째는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에 대한 설명을 부연적으로나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이고, 둘째는 이 책이 이름에 걸맞게 많은 생명체들의 손을 거치고 나서야 국립중앙도서관에 안치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오유만물록에는 조선 시대 사물과 토지에 대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제주도 서쪽에 위치한 조수 웃뜨르 오락실에 대한 문서야. 신기하게도 토지가 아니라 사물로 분류된 조수 웃뜨르 오락실은 일제 강점기 서울에 우후죽순으로 생겼던 오락실娛樂室, 특히 화투를 사용한 코이코이나 주사위를 사용한 쵸한바쿠치, 그리고 일제강점기 초반 유행했던 친치로와 마작, 그리고 광복 이후 유행한 고스톱과 같은 노름을 하는 ‘노름판’과는 결이 다른 공간이었어. 문헌 에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조수 웃뜨르 오락실은 극놀이 형태의 민속 놀이를 행하는 공간이었을 거야. 근데 정말 놀라운 점이 뭔지 알아? 그건 조수 웃뜨리 오락실이 아직도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야. 나는 아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