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by Gongmin · 2026

4.11. 2026
Subject:

쿠모에게,

게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니, 정말 멋진 생각인걸? 신기하게도 요새 게임 비평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 게임 비평이 얼마나 형편없는지에 대해서 말이야.
어느 창작 매체나 마찬가지이듯이, 게임은 하나의 스펙트럼이고, 기다란 막대기의 양극에는 예술과 상업이 위치하지. 근데 게임 비평은 둘 다 같은 위치에서 평가를 한다는 점이 참 기가 막혀. 게임이라는 예술이 어떠한 철학적, 시대적 정신을 반영하는지에 대한 시견으로 보는 경우가 드물어.
그건 인디 게임을 들여다 봐야 해. 쯔꾸르 게임의 역사부터 시작해야 하지. 쯔꾸르 하면 장르가 한정적으로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그건 RPG에만 국한된 적이 없었거든. 슈팅, 액션, 시뮬레이션, 어드벤처 등등. 쯔꾸르는 영상으로 만들어지면서 영상매체와 접목이 되기도 했어. Intersectionality. 그리고 언제나 그것은 장르를 규정하기 어려운 것들이기도 했어. 애초에 장르라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혼란을 잠재우기는 커녕 가중시키는 요소이지만.
정치적인 용도로 만들어진 게임들. 비주류의 게임들을 살펴 봐야 해. 물론 정치적 용도에서 만들어진 것들은 비주류 중에서도 비주류지. 게임 잼의 형태로 나오는 것들이 대표적인데, 대부분 재미보다는 메세지 전달에 목적을 두기 때문일 거야.
정치적이라고 하더라도, 하나의 정체성을 드러내기에 급급하기 때문에 현실에서 상호교차성에 집중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 게임에서 드러나는 struggle은 조금 더 표면적이고, 일차원적이지. 사일런트 힐 f 라는 게임에서 주인공인 하나코가 겪는 비극은, 1960년대 일본에서 여성이 겪은 비극이야.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순종적인 어머니를 미워하고, 결혼하기를 꺼려하는. 하지만 굉장히 헤테로노매티브한,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해. 결국 여러 엔딩들을 보면, 결혼을 한다. 결혼식에서 사람을 죽인다. 파혼을 한다. 결혼을 하거나 하지 않는, 이 두 가지 사이에서만 선택이 일어나지. 나는 그러면 물어. 히나코가 하고 싶은 건 뭔데? 히나코의 꿈은 뭔데?
여성이 결혼을 하면 자기의 정체성이 사라지고 만다는, 페미니스트 서사.
옛날의 한국에서 퀴어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당시에 무당이 되었거나 비구니가 되었을 거야. 덴동어미화전가를 보면. 같은 여성들 사이에서도 교차성이 드러난다고. 노동자 계급, 가부장제, 그리고 나이를 가지고 여러 방면에서 다른 방식으로 억압을 받고 있는 부분이. 조선의 여성들의 분출구가 어디였는지 보인다고. 여성 간의 연대가 보이고, 서사가 보인다고. 답답한 인생을 어떻게 견뎠는지가.
비인간 동물이 이런 게임에서 드러나는 방식도 흥미로워.
하지만 게임에 대한 평가는, 그 이야기의 평면성에는 도달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야. 평가를 할 부분이 다른 매체에 비해 너무 많거든. 음악, 게임플레이, 스토리, 조작법, 그래픽, 버그, 흥행.
게임은 이야기야. 이야기가 놀이의 본질이니까.

사일런트 힐 f가 나온 김에, 게임에서의 남성성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고. 왜 남자의 전유물이 된 거야? 남자들만 게임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게 비디오게임 산업이 가장 크게 기여한 폐해 중 하나거든. 이것도 공부를 해 봐야 해. 난 우리 고모들이 모이면 화투를 재밌게 치던 게 기억나는데. 그럼 왜 그럴까? 여성이 게임을 하고 놀 시간이 없었던 건 아니고? 덴동어미화전가를 봐 봐. 저렇게 놀이를 좋아하고.

근데 집에서 비디오게임을 하는 남자들은 극우화가 되었지. 사회화가 못 되면서, 성적 욕망이 뒤틀린 거겠지. 페미니즘이 장벽을 허물면, 남자도 더 자유로워진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 걸까?
논바이너리가 장벽을 허문다는 사실을 좀 알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