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2026

4.11. 2026
Subject:

쿠모야,

나 커밍아웃 못 할거 같아. 하지 않아도 괜찮아서 하는 생각일지도 몰라.(그래서 사실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기도 민망해.) 이번에 엄마랑 같이 시간을 보냈거든. 근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엄마한테 미안하고 고맙더라고. 정말 그랬어. 연을 끊어야 되나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흔히 철이 든다는 표현. 좋아하지 않는 표현이지만. 내가 그나마 납득할 수 있게 번역해 본다면, 철이 든다는 건 남에게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는 거야. 그리고 그것의 마지막 단계는 부모에게 공감을 하는 능력인 것이지. 그건 부모가 다른 인간과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는 시점이야.
어쩌다 이런 선형적인 삶을 살게 된 걸까. 이게 어쩌면 동양인인 나로서는 탈피하기 어려운 감옥일지도 몰라. 요새 동양철학에 빠졌는데. 음양오행에서는 영원한 시작이고 영원한 끝이며, 계절이 반복되듯 반복되는 무한의 시간을 이야기하거든. 근데 정작 동양인은 시작과 끝이 명확해. 중간중간 모든 스텝이 정해져 있어. 이 고립은 끔찍한 순수 시간인 거야. 웃긴 건, 엄마도 이 감옥에 갇혀 살았던 게 너무 불쌍한 거야. 엄마는 x가 말한, 엄마들의 섬에 고립되어 있다가, 이제야 모범수로 출소했거든. 하지만 아직 크로노노매티브의 섬에서는 나오질 못하고 있어. 그래서 이런 말을 종종 하곤 해.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지 못했다.
이런 시간은 나를 지켜주는 것일까? 나를 옥죄는 만큼 삶의 모서리를 무디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닐까?
난 평생 롤플레잉 게임을 했어. 그것이 언제나 젠더였던 건 아니야. 그건 언어였고, 종교였고, 과학이었어. 나는 행복한 자녀였고, 가족을 사랑했고, 교회를 사랑했어. 뉴스를 보면 상처를 받지 않았어.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는, 축구를 좋아했어. 누가 물어볼까 축구선수들의 이름을 시험 보듯이 외웠어. 연예인들의 이름도 외웠어. 슬픈 영화를 보면 울지 않았어. 딴 데를 보고 있었으니까. 누군가는 그걸 라프라고 부르려나. 아무튼. 말레이시아에서 나는 무엇이었지? 싱가폴에서는? 미안, 내가 모르면 누가 알겠어.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이 된 걸까? 글에서는 픽션이 논픽션이고, 논픽션이 픽션이니까. 내가 정할 수 있고, 쓴 사람이 그렇다고 우기면 그렇게 되는 거잖아. 마치 손톱처럼, 이도 저도 아니어서 규정하려는 시도 자체에 끊임없이 대항하는 그런 거. 롤플레잉의 진짜 가치는 거기에 있는 것 같아. 삶 자체의 드랙-성, 드러나는 것만 나타나는 필연적 놀이의 연장선. 모두의 삶을 롤플레잉으로 볼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해 주었다는 것. 모두가 가면을 쓰고 살아가기에, 나도 가면을 쓰는 게 이상하지 않다는 것. 나의 롤은 무엇인지를 생각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나는 여자이고 싶었던 걸까? 그건 아닐지도 몰라. 생각을 하면 할수록, 논바이너리가 발화하는 방식, 그건 나에게 다른 성별이 되는 것과는 달라. 그건 나에게 지정된 하나의 성별을 탈피하는 거지. 하지만 그건 이 나이 되서야 알게 된 거고. 어릴 땐 몰랐지. 사촌언니들 따라 언니를 언니라고 하면 남들은 귀여워하고 웃겨 했지만, 나는 그저 사촌들이 하는 걸 따라 하는 것 뿐이었어. 언니라는 단어가 누나라는 단어보다 좋았을 뿐이고. 하나의 단어에 가진 어트랙션 정도였달까? 근데 또 형이나 오빠라는 단어는, 둘 다 그닥 마음에 들진 않았어. 왕자라는 단어는 좋았어. 왕자는 바이너리 하면서도 동시에 노매티브에서 조금 더 벗어나 있잖아. 어쨋든 단어가 나에게 주는 기의는 그래. 나는 프린스가 퀸이라는 단어랑 비슷하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모든 음식에 후추를 뿌려 먹었다니깐.
그냥 궁금증이 좀 있었던 거야. 이 세상을 과연 남자로서 살아야 하는 걸까? 남자는 다 같은 걸까? 남자가 아닌 남자도 있는 걸까? 나는 남자인 걸까? 남자는 성적 매력의 대상임과 동시에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걸까?
엄마는 태어나지 못한 내 친언니를 그리워했던 걸까?
난 엄마한테 잘 하고 싶어. 그래서 내 글도 평생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랑 같이 기도하는 세상에서, 행복하게,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